신규 BGM
당신이 대한민국 육군을 나왔든 감비아 공군을 나왔든 루마니아 해군을 나왔든 그 어느 곳이라도 군대를 다녀왔다면 비슷한 기억 하나를 공유할 것이다. 일요일 오후 내무실의 풍경... 종교활동을 다녀온 뒤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자고 있는 병장들, 앉아서 여유롭게 티비를 보고 있는 상병들, 눈치껏 일을 하고 있는 졸병들... 창밖에서 비쳐오는 햇살의 감촉과 PX 냉동의 냄새가 은은히 풍기면 여지없이 연병장에서는 공차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해병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TV 대신 몇몇 해병들이 내무실 앞에서 전우애를 나누고 있고 다른 해병들이 이를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당직 사관이 쓸 데 없는 몽니만 부리지 않는다면 여느 일요일이 으레 그러하듯 모두들 한껏 게으름을 피우며 새로운 월요일을 맞이하겠지. 가장 긴장이 풀어진다는 오후 3시.. 아니 3시 10분쯤 됐을까. 비상벨이 정적을 가로지르며 울렸다. "5대기 비상 5대기 비상, 현재 신원을 알 수 없는 거수자 무리가 정문을 향해 접근 중" 당직 사관의 비장한 목소리가 방송을 이어갔다. "훈련상황이 아닌 실제상황이다 5대기 병력들은 지금 바로 출동할 것, 나머지 인원들도 출동 대기할 것" 한가롭게 누워있던 나 역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군장을 착용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할 것도 없이 모두들 창문에 붙어 바깥 상황을 살펴봤다. 황량한 연병장, 위병소 그리고 위병소 밖 300m 거리에서 한 무리의 군중이 위병소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1592년 5월 23일 임진왜란이 시작되던 그날, 부산진 앞바다를 지키던 초병들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심장에서 치솟는 아드레날린 사이로 막연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모두의 몸을 멤돌았을 것이다. 무리는 점점 위병소를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고 막사 내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참... 참새들이다!!" 카키색 국군 전투복 위 파란 명찰... 틀림없는 참새였다. 그런데 왜 참새들이지? 그러고보니 오늘은 8월 8일... 1966년 8월 8일 해병대의 참새비행학교 습격사건이 벌어진 지 꼭 40년이 되는 날이었다. (세간에는 해병대가 공군비행학교를 기습해 패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황근출이라는 해병 1명이 공군비행학교 전체를 부수고 몰살시킨 사건이다. 당시 해병대 전력 노출과 공군의 사기 등을 우려한 군사정부의 언론통제로 왜곡된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날의 복수를 하겠다고 온 것이었다. 몽둥이와 쇠파이프를 하나씩 든 공군 병력의 숫자는 대략 5000명, 독립중대인 우리 부대의 인원은 고작해야 60명, 이대로 가면 모두들 맞아 죽을 것이 뻔했다. 황근출 해병님만 있었어도.. 황근출 해병님이 남극으로 혹한기 훈련을 가시지 않았더라도... 위병소에 도착한 5대기도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망연자실히 서있었다. 막사는 당혹감과 패배감, 억울함으로 침묵에 휩싸였다. 참새들은 위병소 바리케이트와 철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호랑이 같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Be Marine!"(해병대 답게 행동해라!) 인근 사찰로 종교활동을 갔다가 3만배를 하느라 늦은 박철곤 해병님이었다. 아무도 없는 연병장 한가운데 서서 우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할 셈인가? 죽더라도 해병답게 싸우다 죽어라!" 5천의 적을 등지고 우리를 향해 포효하는 모습은 마치 장판파 위에 홀로선 장비를 보는 듯했다. 순간 막사가 불타올랐다. 나가자 나가자 나가자! 싸우다 죽자! 누가 먼저라도 할 것 없이 모두가 위병소를 향해 뛰어갔다. 오와 열! 박철곤 해병님이 위병소 앞에서 호령했다 오와 열! 10열 종대로 헤쳐모인 우리 60 해병... 박철곤 해병님은 우리를 향해 짧은 연설을 했다. "적의 숫자가 너무 많다. 황근출 해병님도 없는 이상 우리가 이기긴 쉬워보이진 않는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저들에게 해병이 무엇인지, 해병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전사하자" "소총 들어!" 참으로 성대한 광경이었다. 5천의 적을 마주한 우리 60명의 해병은 일제히 바지를 벗고 포신을 움켜쥐었다. 박철곤 해병님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구령했다. "일발 장전!" 우리는 포신을 마구 비벼 우뚝 세웠다. 참새들이 연병장 철문을 모두 부수고 넘어왔지만 이 광경을 보고 당황한 듯 멈췃다. 박철곤 해병님이 우리를 보고 보일듯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뒤를 돌아 참새들을 곧장 바라보았다. "사격 개시!" 우리의 올챙이크림이 참새들을 향해 쏟아졌다. 그중 누군가는 훗날 생애 첫눈을 맞는 날이 기억난다면, 마치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재장전!"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옆으로 돌아 전우의 둔덕에 포신을 꽂고 재장전을 시작했다. 박철곤 해병님은 장전도 없이 계속해서 올챙이크림을 내뿜으며 우리를 엄호했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에게 아드레날린도 공포감도 절망감도 없었다. 오직 타오를듯한 도파민과 해병정신만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했다. 싸워서 이기고 지면은 죽어라 헤이빠빠리빠 헤이빠빠리빠! 철컥철컥철컥 도저히 인간의 몸에서 나올 수 없는 소리가 서로의 몸에서 났다. 따흐흑 따흐흑! 부라보 부라보 해병대! .... 그날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자세한 건 쓰지 않겠다. 한가지 말해줄 수 있는 건 우리 60명 해병 모두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왠지 모르겠지만 인근 공군부대에서도 '전우애'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매년 8월 8일이 되면 나의 포신은 몇번의 사정에도 온종일 가라앉지 않는다. 그날 나의 세포에 각인된 아드레날린 덕분일까. 박철곤 해병님의 포효 덕분일까. 아니면 이제 지울 수 없는 영광스런 해병대 정신의 발현인걸까. 올해도 어김없이 8월 8일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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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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